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84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활계몽대를 결성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군사정권은 대학생의 교복 착용과 중고생의 삭발령을 선포하였고, 이어 「미 성년자보호법」(법률 834호)을 제정하였다. 1964년 6월 3일에는 대일 굴욕외교 반대시위가 있었고, 동년 9월 11일 내무부에 청 소년보호대책위원회가 설치되어 10월 16일에는 시도위원회 11 개, 시군구위원회 169개를 전국에 설치하였다. 이 시기에는 소년 범이 급격히 증가하여 연간 129,670건으로 전년 대비 2배가 증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1965년 6월부터는 청소년선도를 위해 밤 10시에 사랑의 종을 치기 시작하였다. 1965년에는 「청 소년백서」가 발간되었는데, 이것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청소년백서’이다. 동년 12월 8일 국내 15개 민간 청소년단체들 의 자발적인 협의체로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가 창설되었다. 한국 청소년단체협의회는 당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청소년문제에 대 한 공동연구와 정보교환 및 상호협력을 도모하고, 청소년 관련 행정부처와 유관 사회단체, 각급 학교 그리고 세계 청소년기구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청소년 및 지도자들을 위한 연합활동 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이 선 포되었고, 1969년 7월 28일에는 「스카우트활동 육성에 관한 법 률」이 법률 제2118호로 제정되었다. 1970년 8월에는 히피족 더벅머리 청소년 677명을 단속하여 408명을 삭발시켰다. 이해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 이 있었다. 그는 17세의 나이에 봉제공장에 취업해 열악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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