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58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덕, 1970), 근대 소년운동과 일제강점기 학생독립운동을 직접적으 로 연결해 살펴본 선행문헌이나 연구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 나 근대 초기 청년운동의 발흥에 영향을 받아 소년운동이 전개되 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경향 각지 애국 계몽운동가와 소년단체 (사회단체 및 소년회, 소년단)들이 192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소년운동의 대상이자 주체인 소년들 중 일부가 각성과 성찰의 경 험을 지닌 학생으로 성장함에 따라 소년운동이 청년운동 즉, 학 생독립운동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으리란 점은 자명하다. 특히 소년운동이 소년에 의한 운동으로 전환되고(김정의, 1992: 192~193), 학생운동 역시 1930년대 들어와 학생에 의한 계몽활 동으로 확산되면서(오병헌 외, 1970: 129), 소년과 학생의 주체성과 자발성, 시대에 대한 성장세대의 권리와 책무 등에 대한 인식이 확대·강화되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삼아 1926년 6.10만세운동, 그리고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 을 통해 청년 학생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고, 동경 유학생 및 국내 전문학교 학생들의 활발한 사회계몽 운동이 전개되면서 소년운동 즉, 소년을 위한 사회계몽 운동에도 청년학생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소년운동과 청년학생독립운동의 접점이 마련되어졌다. 러진 경우, 유소(儒疏: 학생들이 연명하여 상소하는 행위), 소두(疏頭: 유생의 대표가 관생[館⽣]들을 이끌고 궁 앞에 부복하여 상소를 하는 행위), 권당(捲堂: 식당에 들어가지 않고 단식동맹에 돌입하는 행위), 공제(空⿑: 당시 성균관 유생들은 성균관 문묘 좌우에 있는 동서양제에 반드시 기숙을 하게 되었는데, 이 기숙사에서 모두 나가는 행위), 공관 (空館; 유생 전부가 ⼤成殿神⾨ 밖에서 사배를 하고 퇴거하는 행위) 등의 저항을 하였 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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