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56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계열은 소년운동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소년운동은 좌 우 주도권 싸움으로 혼란에 빠졌고 끝내 1929년 어린이날 기념 행사가 총연맹 측과 천도교소년(연합)회 측의 두 갈래로 거행됨으 로써 다시 양분되고 말았다. 이러한 소년운동의 내분을 우려한 재경소년단체 대표들이 다시 회담을 갖고 통일된 어린이날 행사 를 준비하기 위해 1931년 3월 ‘전조선 어린이날 중앙연합준비 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총연맹 측에서는 준비회의 결성을 반대 했을 뿐만 아니라 준비회 측에서 거행하는 어린이날 행사를 배격 하였다. 1931년부터는 일제당국의 유아애호주간으로 어린이날 행 사의 주도권이 넘어감과 동시에 어린이의 권리 차원이 아닌 육체 적 건강을 강조하였다. 총독부의 조선사회사업협회가 주관하는 유 아애호주간 행사는 어린이의 건강검진, 영양 강습회와 같은 계몽 사업이 전개되었다. 1937년 본격적으로 대륙침략을 개시한 일제 는 우리 민족의 소년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모든 소년운동단체를 강제 해산시키면서 어린이날 행사도 중단되었다.24) 이로써 한국 의 소년운동은 1945년 광복까지 중단되었다. 근대 소년운동은 아동권리의 관점에서 두 가지 큰 의의가 있다. 첫째는 어린이란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고 어린이날 제 정과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아동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전환 24) 1931년 조선총독부는 어린이날을 폐지한 후 1945년 해방되는 해까지 일본의 ‘유아애호데이’처럼 ‘유아애호주간’으로 바꾸었다. 어린이날은 1945년 광복을 맞아 비로소 부활하였고 5월 5일로 정해졌으며, 1975년에 법정 공휴일이 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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