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민족운동과 아동의 발견 55 상설기구인 ‘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매년 5월 1 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전국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1924 년 5월에는 소년운동협회에 가입한 소년단체가 123개에 이르렀 다. 천도교에서 시작된 소년운동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모 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1925년 무산소년운동을 표방한 ‘오월회’가 별도로 조직 되어 운동 방향을 둘러싸고 소년운동계는 양분되었다. 1926년과 1927년의 어린이날 기념행사는 소년운동협회와 이에 대립하는 오월회 두 단체에서 별도로 여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양분된 소년운동의 통합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1927년 두 단체는 통합을 위한 준비회담을 갖고 동년 10월 16일 100여 개 이상 단체의 가입신청을 받아 52개 단체대표 96명이 참가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개최하여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하였다(위원 장: 방정환). 연합회는 어린이날인 5월 1일이 ‘메이데이’와 겹치는 관계로 일제당국이 이를 빌미로 어린이날 행사를 탄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5월 첫째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또 소년단체의 가입 연령을 18세 이하로 정하고 어린이날 노래를 새로 제정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소년운동의 주도권은 무산소년운동을 주장하는 사 회주의 계열이 주도하면서 1928년 3월 제2회 정기총회에서 ‘조 선소년총동맹’이 창립되었다. 그러나 일제당국은 이 단체명의 사 용을 금지하여 곧 ‘조선소년총연맹’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이후 소년운동을 주도해오던 천도교소년회와 방정환 등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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