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천도교소년회는 창립 1주년을 맞아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했고, 이듬해인 1923년 3월 16일 일본 동경에서 방정환, 손진태, 정순 철, 고한승, 진장섭, 정병기, 강영호 등을 중심으로 색동회를 창 립한 후, 범조선 소년운동단체연합의 성격을 띤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로 동년 5월 1일 어린이날 선언에 이르게 된다(김정의, 1992; 최명표, 2011).23) 당시 발표된 어린이날 선언문에는, “어린이를 종 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허용 하고”,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연소노동 을 금지하며”, “어린이가 배우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정과 사회 시설을 보장할 것”과 같은 아동존중사상이 드러나 있다. 이후 어린이날의 제정과 기념일을 통해 이념적 노선에서 민족 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소년운동은 통합과 분열의 지난한 질곡의 역사를 거친다. 1923년 4월 17일 천도교소년회는 당시 새로 생긴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 소년소녀단체들과 각 신문 사 기자들이 모여 어린이날 행사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비 23) 이른바, 어린이운동, 소년운동의 기점을 언제부터 볼 것인가는 이미 오래된 논쟁이다. 그런데 이 논쟁은 어린이날을 언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것인 가?(한국방정환기금, 1997)와 민족해방운동의 하나로써 소년운동의 시작점을 언제부터로 볼 것인가?(김정의, 1992; 2006; 최명표, 2012)로 나누어진다. 전자 는 1997년 방정환기금에서 주최한 심포지움에서 조찬석(1923년 주장), 이재 철(1922년 주장), 김정의(1921년 주장), 김재은(1920년대 초)에 의해 각기 다르게 다루어진 바 있지만, 오늘날은 사회적으로 1923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후자는 구체적으로 합의된 바 없이 사람에 따라 분분한 편이다. 이는 오늘 의 토론회와는 동떨어진 논외의 주제이지만 향후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보 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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