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25 불정책(崇佛政策)으로 유교가 한때 부진하였다가 성종 11년(서기 992년)에 비로소 국자감(國⼦監)을 세웠고, 문종 때는 최충(崔沖)이 9재(齋)를 설치하고 학도를 가르쳤다. 이후 무관의 발호와 계속된 전란으로 유교는 다시 침체하였다가 고려 25대 충렬왕 때 안향 (安珦)이 왕을 따라 연경(燕京)에 다녀오면서 『주자전서(朱⼦全書)』를 입수해온 후 국학을 세우고 대성전(⼤成殿)을 건립해 공자를 존숭 하는 등 유교 부흥에 힘썼다. 그는 한국에 주자학(朱⼦學; 性理學) 을 처음 수입하여 우리나라 주자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성리학 은 이(理)·기(氣)의 개념을 천착하면서 우주의 생성과 구조, 인간 심성의 구조,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세 등에 관하여 깊이 사색함 으로써 한당(漢唐)의 훈고학(訓詁學)이 다루지 못하였던 형이상학적 (形⽽上學的)·내성적(內省的)·실천 철학적인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유 학사상을 수립하였다(서울대 교육연구소, 1995). 유교의 교육론은 인성론과 우주론에서 도출된다. 주자가 『대학 (⼤學)』 장구서(章句序)에서 “하늘이 사람(백성)을 내릴 때 인의예지 의 성품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부여받은 각 개인의 기질 이 혹 똑같지 못한 까닭에 모든 사람에게 그 성품의 온전함을 알 게 하여 완전하게 펼치지 못하는 것”12)이라고 했듯이 하늘은 모 든 인간에게 인의예지와 같은 올바른 성품인 천명지성(天命之性),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부여하였다. 문제는 인간의 기질인데, 사람 12) 蓋⾃天降⽣民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 然 其氣質之稟 或不能⿑ 是以 不能皆有以 知其性之所有 ⽽全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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