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제5장 아동권리의 성장기 99 그들의 현재 삶을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폄하시켜, 결국 그들 만의 독자성을 현실로부터 인정받기란 용이하지 않다고 주장하였 다. 마침 이런 논의와 함께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부여한 ‘학생’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변화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는 수업붕 괴, 교실붕괴, 학교붕괴와 같은 공교육 위기담론으로 현실화되었 고(김민, 2000; 이종각, 2000), 이후 자발적 학업중도탈락(조혜정, 1996; 연세대 청년문화센터, 1999; 탈학교모임 친구들, 1999; 김민, 2001), 홈스쿨링, 대안학교, 자율적 학습 네트워크 축조, 탈학교 론의 등장(이한, 1998)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어 청소년 인구집 단의 주목할 만한 일련의 운동들 즉, ‘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 국중고등학생연합’의 ‘노컷(No Cut)운동’, ‘탈학교연대를 위한 모 임’의 ‘탈학교운동’과 ‘교육통화운동’, ‘한국청년연합회’의 ‘좋은친 구만들기운동’, 한국YMCA의 ‘평화지기운동’들이 연달아 등장하 였다(김민, 2004). 이들 운동이 함의하는 의미는 이전의 아동관과 청소년관으로는 이젠 더 이상 포섭하기 어려운, 성장세대의 주도 성과 자발성에 기초해 사회 주도세력의 하나로 인정해 달라는 권 리주장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시기의 연대기별 주요 사건과 의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먼저 1991년 우리 국회는 유엔이 1989년 11월 유엔총회에 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함으로써 국내법 상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였다. 동년 6월 27일 청소년정책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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