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100 Years of Chi ldren’s Rights in Korea 01 교육영역 김민엮음 PART 1923 1928 1932 1937 1942 1947 1952 1957 1962 1967 1972 1987 1977 1982 1992 1997 2002 2007 2012 2017 2022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 | 편찬위원 | 허남순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 편찬위원 | 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집필위원 | 오정수 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 집필위원 |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집필위원 | 강현아 숙명여자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복지학과 교수 | 집필위원 | 안재진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편찬위원 | 제철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집필위원 | 정태구 조선대학교 법사회대학 교수 | 집필위원 | 한소혜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교육 영역 | 편찬위원 | 김 민 순천향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 l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l 이 책은 집필진의 견해에 기초하여 작성되었으며, 아동권리보장원의 공식 입장 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복지 영역 ─ | 편찬위원 | 허남순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 편찬위원 | 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집필위원 | 오정수 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 집필위원 |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집필위원 | 강현아 숙명여자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복지학과 교수 | 집필위원 | 안재진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 | 편찬위원 | 김 민 순천향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차 례 서 론 7 제 1 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9 1. 근대 이전 전통적 아동관 11 1) 개요 11 2) 무속과 신화에서의 아동관과 아동교육 14 3) 불교와 유교, 동학에서의 아동관과 아동교육 20 2. 근대 학교의 설립과 소년운동 30 1) 근대 학교의 설립과 한계 30 2) 소년운동의 태동과 성장 38 제 2 장 민족운동과 아동의 발견‧47 1. 일제강점기 식민지 학교 교육 47 2. 소년운동의 발전과 분열 53 제 3 장 국가 재건과 아동권리‧63 1. 교육체제의 수립과 형성 63 1) 미군정기 교육체제의 수립 64 2) 정부수립과 교육체제의 형성 65 2. 학교 교육 편입에 따른 아동의 학생화 67

제 4 장 아동권리의 형성기‧73 1. 학교 교육제도와 법령의 정비와 확대 75 2. 아동의 학생 신분 강화 82 제 5 장 아동권리의 성장기‧89 1. 교육개혁 추진과 교육법제의 안정화 91 2. 아동과 청소년: 권리연령의 연장 97 제 6 장 아동권리의 확산기‧103 1. 교육 출발점 평등과 교육기회의 균등 105 2. 역량 중심 교육체제 구축 108 3. 아동 삶으로 삼투하는 권리 확대 113 참고문헌 121

서 론 이 글은 아동을 중심으로 역사와 교육이란 주제에 기초해 기술 되었다. 역사란 사실(史實)에 대한 기록이자 인간 삶에 대한 해석 이다. 교육은 인간 삶의 발전 방향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아 인간 의 역량을 개발하고 지지하는 사회적 지원을 말한다. 시대에 따 라 인간 삶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다르게 규정되어 왔지만, 당대 의 합의적 가치에 준거하여 각 개인의 역량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교육은 고대로부터 존재하였다. 따라서 아동의 교육사에 대한 접 근은, 결국 아동이란 인간 삶의 단계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 해 왔으며 또 그에 따라 교육적 측면에서 사회적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 구한말에서 1923년 이전까지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 구한말에서 1923년 이전까지 1. 근대 이전 전통적 아동관 1) 개요 오래전 서구사회에서는 인간의 삶과 교육의 관계에서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 혹은 존엄한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인간 중 가장 미천한 존재로 여겨왔다(Osborn, 1985: 16). 근대 이전의 아동을 둘러싼 억압들은 일상과 같았는데, 중세 이전에는 아동기란 개념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Suransky, 1982).1) 또 사회 와 어른의 필요에 따라 아동의 존재는 종종 묵살당하기도 하고, 때때로 영아는 유기되거나 사고 팔리며 희생의 제물이 되기도 하 1) 필립 아리에스(P. Aries) 역시 이 주장에 서 있는 연구자이다. 그는 아동기란 연령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기가 아니라 근대에 이르러 이전 시기와 확실 히 달라진 사회문화적 현상의 변화에 근거해 형성된 ‘문화적 산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유의미한 글로 홍은영 (2014), Zum modernen Verstandnis von Kindheit aus histoirscher Perspektive, 교육의 이론 과 실천, 19(2)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12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였다(Greenleaf, 1979). 봉건적 절대주의 하의 유럽에서 아동은 나 름의 인간적 욕구나 목표를 가지는 주체적 생활자가 아니라 단지 외부의 주문에 의해 가공될 수 있는 존재이며, 가능한 한 지식이 나 도덕을 쓸어 담는 그릇 정도로 간주되기조차 하였다. 성인 중심주의(adultcentrism) 사회에서 아동의 존재가 근대교육 의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서양의 경우, 로 크(J. Locke)와 루소(J. J. Rousseau)에 의해서였다. 특히 루소는 그 의 저서 『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 )』에서 “아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나며 또한 자유롭게 태어난다. 그들의 자유는 그들의 것이므 로 다른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아동을 권리와 자유의 주체로 인정하고 자신의 자유 를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교 육의 새로운 전환기를 열었다(Rousseau, 1942). 이에 따라 교육은 아동의 본원적 자유에 입각해 주체적 능력을 발현시킴으로써 자 기를 실현하고 인격적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사회적 장치가 되었 다.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아 동 근대교육의 성립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동이란 존재를 바라보는 아동관의 혁신적 변화가 근대교육의 핵심 맹아였던 것 이다.2) 루소의 영향은 이후 바제도우(J. B. Basedow), 잘츠만(C. G. Salzmann), 페스탈로치(J. H. Pestalozzi), 프뢰벨(F. Fröbel) 등 2) 아동기의 탄생과 대중교육제도의 확대는 밀접하다. 이에 대해서는 김민·안동 현(2021)의 글을 참고하시오.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13 으로 이어졌고, 미국에서는 듀이(J. Dewey)의 진보주의적 교육학 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가 해방 이후 급격한 서 구화 과정을 겪으며 압축적으로 성장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압축성장이 갖는 진통의 역사가 그러하듯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많 은 것을 얻기도 했고, 또 잃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한마디 로 정의한다면 서구 근대성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동 시에 서구 근대성에 내재된 한계를 초극하려는 과정이었다. 교육 이 그런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 길의 핵심 대상이자 최근 주 체로 대두되는 집단이 바로 아동이다. 물론 이전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이 아동의 권리를 전혀 주목하 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아동을 온전 한 인간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아동 연령기를 일컫는 여러 용어를 사용해왔고, 또 그 용어에 깃든 의미를 다양하게 해 석해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유년기에서부터 아동에 이 르는 연령기를 아해(兒孩), 유자(幼⼦), 동자(童⼦), 동치(童穉), 동몽 (童蒙), 동츤(童齔), 해제(孩提), 해동(孩童), 유자(孺⼦), 동진(童眞) 등 으로 불러왔다(안경식, 2000). 하지만 아동에 대한 해석과 접근은 근대 이전 서구의 관념과는 사뭇 다르다. 어린 인간,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미성숙한 시기의 인간이란 서구의 사유와는 달리 우리의 전통적 사유는 아이를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 곧 소우주적 존재로 사유하려는 경향이 강

14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했다. 그런 사유는 종교적 색채와 함께 유교의 도덕적·훈육적 사 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전통적 아동관에는 응당 무속과 신화, 불교, 유교, 동학(東學)이 연결되고, 태교(胎敎)와 『명심보감』 으로 상징되는 인격적 도야와 도덕적 섭리의 논리가 배어 있다. 2) 무속과 신화에서의 아동관과 아동교육 인류 고대사에서 종교는 인간의 삶과 유리될 수 없다. 종교의 최초 형태는 삼라만상에 정령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하는 애니미 즘(animism), 곧 물활론(物活論)이자 만유정령설(萬有精靈說)로 정의 할 수 있다. 모든 자연에는 정령이 있고, 정령의 존재는 영혼의 불멸을 의미한다. 영혼의 불멸은 조상신을 비롯한 여러 인격신(⼈ 格神)과 의인격신(擬⼈格神)을 만들어낸다. 일찍이 인류는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는 의인주의적(擬⼈主義的) 자연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손인수, 1993a: 50~53). 무속이라 불리는 민속신앙도 애니미즘에 뿌리를 둔다. 무속이 한국 교육의 원형임을 밝힌 김인회(1979)에 따르면, 물신(物神)과 조상신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를 매개하는 무당은 스스로 각성을 통해 인간 삶의 중재자로 거듭나고, 방울과 공수로 대표되는 신 탁3)을 통해 인간 삶의 마디를 어루만진다. 체험의 각성은 민중들 3) 우리나라 무속은 세습무와 강신무로 구분된다. 세습무 문화권은 태백산맥 동 쪽에 해당하는 동해안 일대와 남해안, 그리고 호남내륙 및 서해안 일대에 걸 친 한남 이남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반면 한강 이북의 나머지 지역, 즉 서 울, 경기, 황해, 강원 영서 지역, 평안, 함경도 지역은 강신무 문화권이다.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15 에게 다시 전이되면서 여러 신들과 조상신을 저어하며 삶에 대한 각성과 각성 이후의 삶을 이어간다. 한국 무속의 교육적 원형은 ‘체험을 통한 각성’으로 실존 교육의 체험 과정인 셈이다(김인회, 1983). 그것은 흥미롭게도 샤머니즘 연구로 널리 알려진 엘리아 데(M. Eliade)가 세상의 존재양식을 성(聖)과 속(俗)으로 구분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자연적 삶에 얽매이지 않고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보다 높은 삶으로 중생(重⽣)해야 한다 는 의미4)와 연결된다. 예를 강조하는 유교적 예법이 한국인의 삶 가운데 관혼상제를 관장해왔으나 개인적 삶의 위기를 풀어주는 다양한 제도와 장치는 갖고 있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민간은 삶 의 마디를 넘어서는 많은 의례를 갖고 있지만 신체장애, 질병, 이 별, 기근, 자연재앙, 재난과 같은 삶의 위기를 넘어서는 의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속은 면면히 이어져왔다(조정호, 2002: 208). 그 틈을 무속은 파고 들어가 기층종교로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무속에서 아동은 신이 점지한 우주적 존재이자 신적 존재이다. 출생은 신에 의해 점지되고 태중 10개월도 신의 지극한 보호 아 강신무는 방울을 흔들며 공수를 주는 데 비해 세습무는 방울을 사용하지도 않고 대나무 등을 이용해 점을 치거나 혹은 무당이 신탁을 전하는 역할을 직접 하지 않고 제삼자에게 대신하도록 한다. 여기서 공수란 무당의 몸에 실 린 신령이 무당의 입을 통해 인간들에게 전한다고 믿는 무당에 의한 신탁행 위를 말한다(김인회, 1993). 4) 중생이란 엘리아데가 말한 성속변증법적 과정으로, 고난(suffering)→죽음(dea- th)→재생(resurrection)으로 이어지는 통과의례의 전형적인 도식을 말한다 (Eliade, 1989: 196). 여기서 재생은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며 체험을 통한 각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삶(重⽣), 정화의 삶을 의미한다.

16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래 성장하며, 출생할 때도 신에 의해 명과 복을 받고 태어난다. 신의 섭리와 도움으로 아동은 출생하고 성장한다. 운명론 혹은 정명론(定命論)에 가까운 아동의 삶은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변곡 점을 맞이한다. 삶의 마디인 셈이다. 인간은 무당을 통해 신과의 타협과 지지 아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운명론으로부터의 탈 출이다. 이처럼 무당은 인간과 신과의 갈등을 풀어주는 해결자이 자 삶의 과정에서 영혼과 실제의 삶을 치유하는 교육자, 상담자 의 역할을 한다. 무속에서 아동은 우주와 무관한 개별적 존재가 아니며 신과 교통하면서 지내는 우주적 존재여서 이들의 삶은 성 과 속의 변증법적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무속에서 아동교육은 바로 속의 삶을 성의 구조로 바꾸어주는 변화의 과정 이다(안경식, 2000: 81). 신화는 인류가 지닌 상상력의 발로이자 공동체의식의 산물이다. 신화는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터득하고 만들어낸 원초의 인간 이야기이다. 신화는 인간 삶의 원형이며 동일한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적 소산이다. 신화 역시 애니미즘과 같은 맥 을 갖는다. 하늘과 땅이, 태양과 물의 신이 우리 민족의 근원이 되고 곰과 호랑이를 비롯한 동물이 의인화되어 삶의 뿌리가 된 다. 우리나라 개국신화인 단군신화(檀君神話)는 13세기 말 고려 충 렬왕 때 일연(⼀然)이 찬술하고 그의 제작인 무극이 약간 가필한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인용한 고기(古記)와 이승휴의 『제왕운 기』에 기록되어 있다.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17 “천제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하를 다스릴 뜻이 있음을 안 환인 은 하계를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 땅이므로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 산정 신단수 아래 내려와 나라를 열고 신시라 하였다. …… 이때 에 곰 한 마리와 호랑이가 같은 굴속에서 살다가 환웅에게 사람으 로 환생하기를 원하였다. …… 곰은 여인으로 변하기는 하였지만 짝이 될 사람이 없어서 늘 단목 아래서 기원을 드려 마침내 그 정 성으로 환웅의 돌보심을 받아 아들을 낳으니 이가 즉 단군왕검이 시다.”(손인수, 1993a: 76~77에서 재인용)5) 단군은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낳은 아들이다. 곧 천지인의 합 일이다. 신화에는 하늘과 땅으로 상징되는 부모가 드러나고, 자식 의 탄생을 위한 어머니의 축원, 곧 기자사상(祈⼦思想)이 깃들어 있다. 단군은 신과 인간의 중간자이자, 신과는 달리 보통 사람과 함께 살면서 천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한다. 단군은 1,908세란 긴 세수를 누리고도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백악산 아사달(阿斯達)에 숨어 끝까지 산(⼭)의 사람(⺅)이 되었다. 인격신이 된 것이다. 산 사람은 곧 선(仙)이다(이계학, 1992). 여기서 선은 최치훈이 「난랑 비서(鸞郎碑序)」에서 언급한 바로 그 선이다.6) 신화가 무속으로 이 5) 昔桓有桓因(謂帝釋也) 庶⼦桓雄 數意天下 貪求⼈世 ⽗知⼦意 下視三危太伯可 以弘益⼈間 乃授 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頂 神壇樹下 謂 之神市 …… 時有⼀熊⼀虎 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 …… 熊⼥者無與爲 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婚之 孕⽣⼦ 號⽈壇君王儉.”(三國遺事 卷 第⼀ 古朝鮮條, 손인수, 1993a: 76~77에서 재인용.) 6)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流)라 이른다. 그 기원은 선사(仙

18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어지고 우리 민족의 고유하고 현묘한 도로 이어지는 지점이 바로 이것, 선이다. 삼국시대 난생신화(卵⽣神話)는 하늘을 숭배하는 제천의식에 더 하여 탄생과 창조의 근원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소우주로서 알이 상징되며, 그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은 인간이 소우주로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이는 그 자체로 소우주이며 이와 같은 소우주적 아동관은 서구 근대 이전의 아동관, 곧 아동은 불 완전하거나 미완성된 존재라는 관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교육이란 개념 역시 근본적으로 달랐다. “혁거세는 알에서 깨어날 때 ‘단정하고 아름다웠으며, 몸에서 광채가 나고 들짐승, 날짐승이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고 일월이 청명하여’, 열세 살에 즉위를 할 수 있었으며, 주몽 역시 ‘기골과 용모가 빼어났으며’, 일곱 살에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발백중의 실력을 과시하였다. 또 수로는 ‘나날이 자라 십여 일 만에 키가 구척이나 되었고’ 태어난 달의 보름에 즉위할 수 있었다. 알지 역 시 아이로서 대궐에 들어올 때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면서 기 뻐하여 뛰놀고 춤추었으며’, 곧 태자로 책봉되었고, 탈해 역시 발 견될 당시 궤 속에 칠보와 노비들이 가득하였으며 현명한 아이로 史)에 자세히 실려 있다. 실로 이는 삼교(三敎: 유, 불, 선)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그리하여 그들(화랑)이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 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孔⼦)의 주지(主旨)이며 또 모든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묵묵히 실행하는 것은 주주사(周柱史: ⽼⼦)의 가르침이며, 악한 일 을 하지 않고 착한 일만을 행함은 축건태자(竺乾太⼦: 釋迦)의 교화이다.”(조정호, 2002: 204에서 재인용.)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19 성장하였다. 이를 보아 신화적 아동관은 미완성의 아동관과는 다 른 ‘소우주적 아동관’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니 교육 또한 어른 이 지식이나 기능을 가르쳐주고 아동이 배우는 세속적 방식과는 같을 수 없었다.”(안경식, 2000: 36.) 아동을 소우주적 존재로 본다는 것은 인간 자체를 자연의 하나 이자 완성된 한 인간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널리 인간세계를 이 롭게 하기 위해 인간의 세계로 온 인격화된 신의 존재에 대한 신 화, 곧 단군신화에서 널리 이롭게 해야 하는 인간에는 응당 아동 도 속하며, 신의 존재(桓雄)이자 곰으로 의인화된 존재(熊⼥)가 각 각 부와 모이자 조상의 뿌리가 됨으로써 아이는 곧 완벽한 신의 인간세계로의 현신이 된다. 근대 이전 서구의 관점에서 아동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존재였다면, 무속과 신화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통사상에서는 인간과 아동을 우주적이고 신적인 존재로, 그 자 체로 완성된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완성된 존재로서의 아동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부모와 가정의 역할은 각별했다. 아동교육은 바로 부와 모에서부터 시작된다. 전 통적으로 교육은 부모의 역할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을 중시 했다. 고대 신화에서는 이미 어머니의 역할을 “낳고 품고, 기르 고, 먹이고, 감싸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역할 규정은 한국인 특유의 자애로운 어머니상(慈母)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후술되겠지만 아동에게 있어 교육이란 용어보다 ‘무육(撫育)’이란

20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용어가 더 잘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가족이 함께 거하는 집은 여러 신들이 입재하는 성스러운 공간이자 그 속에서 사는 우리들의 삶을 속된 것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바꿔주는 교육 공간이다. 3) 불교와 유교, 동학에서의 아동관과 아동교육 우리나라에서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 전진(前 秦)에서 부견(苻堅)왕이 사신과 함께 순도화상(順道和尙)을 보내 불 상과 불경을 전한 것이 시초이다. 불교는 이 땅에 들어올 때 재 래의 전통을 해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전통을 용인 혹은 승인 하면서 그 과정에서 불교 고유의 교리를 포교하며 인심을 얻었고 이로 인해 이 땅의 주요 종교로 자리를 잡았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에 따르면 인간은 번뇌의 존재이고, 번뇌는 욕망에 기인하며, 욕망의 근원은 물심(物⼼)에 대한 애착에서 생긴 다고 보았다(박선영, 1981). 만물이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인연을 가지고 성립된 존재로 이들이 항상 변화하고 있음을 인간이 달관하면 스스로가 만든 고뇌에서 해방, 곧 무아(無我)의 지경이 된다. 그리고 모든 고뇌와 번뇌를 초극하는 자유 경지에 이르면 인간은 열반에 들어간다(손인수, 1993a: 100). 불교에서 인간은 중생(衆⽣)이다. 이들 중 깨달아가고 있는 중생 을 보살(菩薩)이라 한다. 보살은 성불의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이 들은 네 가지 서원(四誓願)과 함께 여섯 가지 실천의 길(육바라밀波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21 羅密)을 걸으며 성불로 다가간다.7) 원시불교는 중생이 자기 인격 을 완성하기 위해 사제(四諦) 즉, 고(苦), 집(集), 멸(滅), 도(道)와 십 이연기(⼗⼆緣起)8), 팔정도(⼋正道)9)를 강조했지만, 대승불교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보살 수행법으로 육바라밀이라는 독자적인 수행법 을 설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닦고 수행하는 실천법이야말 로 불교에서 말하는 교육의 상이었다(박선영, 1983). 불가에서 인간은 연기(緣起)와 변화의 존재이며, 업(業, karma)과 윤회의 산물이다. 인간은 전생의 업에 의해 현세가 결정되고 현 세의 업에 의해 내세가 결정되는 인과론적 존재이다. 다른 생명 체와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사유(死有), 중유(中有), 생유(⽣有), 본 유(本有)의 과정10)을 반복하는 존재로, 중유에서의 인(因)이 생유와 7) 보살의 사서원은 “① 중생을 다 건지오리라, ② 번뇌를 다 끊으오리라, ③ 불법을 다 배우오리라, ④ 불도를 다 이루오리라”이다. 이 서원들을 구체적 으로 실천하도록 표현한 것이 육바라밀로, 이는 “① 널리 베풀고(布施), ② 계 율을 지키고(持戒), ③ 참고 용서하며(忍辱), ④ 줄기차게 노력하고(精進), ⑤ 정 신적으로 집중하며(禪定), ⑥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밝게 꿰뚫어 보는 지혜(般 若波羅蜜)를 갖는 것”을 말한다. 8) 과거에 지은 업(業)에 따라 현재의 과보(果報)를 받으며 현재의 업에 따라 미 래의 고(苦)를 받는 열두 개의 인연. 곧, 무명(無明)·행(⾏)·식(識)·명색(名⾊)·육근 (六根)·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노사(⽼死)를 말한다. 9) 인간의 고통을 멸하고 이상에 이르기 위한 현실에서의 여덟 가지 실천을 말 한다. 즉 “① 정견(正⾒): 올바른 견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사제 를 인식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② 정사(正思): 올바른 사고방식 ③ 정어(正語): 올바른 언어 ④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의 실천 ⑤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 ⑥ 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 ⑦ 정념(正念): 올바른 사념(思念), 주의력. 마음으로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 ⑧ 정정(正定): 올바른 정신통일, 명상” 등을 말한다. 10) 생유는 태어나게 되는 찰나를, 본유는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를, 사유는 최 후의 찰나를, 그리고 중유는 사유와 생유 사이의 단계, 즉 윤회의 과정에서

22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본유에서의 과(果)가 되고, 생유와 본유에서의 인(因)이 사유와 중 유에서의 과(果)로 나타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현상의 결과보다 는 그 결과를 낳게 한 원인을 중시하고, 중유 또한 인간 탄생의 전 단계로서 현세의 삶을 결정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중시된다(안 경식, 2000: 114). 그러므로 윤회론을 주창하는 불교에서는 또 다 른 나의 삶, 내세를 위해 지금의 삶에 충실한 업으로 살 것을 주 문한다(박선영, 1983). 동시에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업이지만, 나 의 입장에서 보면 나 자신의 업이다. 한 인간이 태어날 때 부모 특성을 이어받은 것은 부모의 업이 미치는 영향이지만, 전적으로 부모와 내가 같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의 고유한 업이 작용했기 때 문이다. 유전은 단지 부모의 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나의 업도 생유·본유·사유·중유의 단계로 이어지며 계속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 인간의 탄생은 중유와 부모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태아의 바람직한 탄생을 위해서는 부모나 중 유 모두 바람직한 상태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즉, 올바른 아동 교육의 전제조건은 중유와 부모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안경식, 2000: 116). 불교에서 인간의 생애는 열 가지의 단계(嬰兒, 童⼦, 少年, 少壯, 盛年, 成就, 漸衰, 朽邁, 極⽼, 百年), 여덟 개의 단계(處胎位, 出⽣位, 嬰 앞 단계의 죽음에서 다음 단계의 탄생 사이에 있는 단계를 말한다. 불교에 서 인간의 출생은 이 중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안경식, 2000: 89).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23 孩位, 童⼦位, 少年位, 中年位, ⽼年位, 耄熟位), 그리고 다섯 단계(嬰孩 位, 童⼦位, 少年位, 盛年位, ⽼年位)로 나눈다. 아동의 시기에 해당하 는 생애는 열 가지 단계에서는 각각 영아와 동자의 시기를, 여덟 단계에서는 처태위와 출생위, 영해위, 동자위를, 다섯 단계에서는 영해위와 동자위를 말한다.11) 불교는 모든 사람, 곧 일체중생에 게는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사람이 올바른 수행을 닦는다면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이 른바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의 중심이 되는 사상이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대반열반경(⼤般涅槃經)』 영아행품(嬰兒⾏品)에서 언급 하고 있듯이 아이의 마음·행동은 여래의 마음·행동과 다르지 않 다. 아이 역시 불성을 지닌 존재이며,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아이 가 아닌 마음이 아직 세속에 물들지 아니한 이상적 인간(놀랍게도 이는 루소의 아동관과도 맞닿아 있다), 그 자체로 작은 여래인 것이다. 연기론과 윤회론을 강조하는 불교에서는 현재보다 현재를 있게 11) 인생을 열 단계로 구분하는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切有部毗奈耶雜 事)』에서는 “영아는 포대기에 누워있는 것이요, 동자는 소꼽놀이를 하는 것 이며”라고 기술하고 있고, 여덟 단계로 구분하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 서는 “처태위는 태안에 태어나서 출생하기 전까지 모태에 의지하고 있는 동안이며, 출생위는 좁은 뜻으로 말하면 사람이 출생하는 동안을 말하고, 영해위는 아직 뛰어놀거나 분별한 능력이 없는 아이를 말하며, 동자위는 자 기 자신을 인식하고 모든 환경과 대상 등을 구별할 줄 아는 아이”를 말한 다. 다섯 단계에서 영해위는 출생에서 6세까지를, 동자위는 7세부터 15세 까지를 말한다. 참고로 소년위는 16세에서 30세까지다. 불교 경전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아동이란 말은 보이지 않고 동자(童⼦), 동아(童兒), 동진(童眞)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4세에서 20세 사이의 남자를 말하며 여자는 동녀(童⼥)라고 한다(안경식, 2000: 107에서 재인용). 근대기 소년이란 말 과 사뭇 뜻이 다름을 알 수 있다.

24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한 원인을 강조함으로써 아동 출생 후의 교육보다는 출생 이전과 출생 초기의 교육, 즉 태교와 조기교육을 강조한다. 부모는 아이 를 갖기 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지니고 유지해야 하며, 아이를 갖고 난 후에도 몸과 마음가짐에 유념해야 한다. 중유를 위해 현 세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부지런히 선정과 지혜 를 갈고 닦아야 한다. 공자를 시조로 삼아 인(仁)을 도덕의 최고이념으로 삼는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연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고증할 길이 없 다.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내며 당대(唐代) 최고학부인 국자학(國⼦ 學)을 우리나라에도 세운 것을 보면, 이미 삼국 시대에 유교가 보 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에 태학(太學)을 세웠고, 백제는 고이왕 52년(서기 285년)에 이미 왕인 (王仁) 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한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유학이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도 오래전부터 전래 된 것 같은데, 국학은 신문왕 2년(서기 682년)에야 비로소 설립되 었다(손인수, 1993a: 137). 이후 신라에서는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 내 학문을 장려하고, 최치원(崔致遠)은 당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이 름을 떨쳤으며, 설총(薛聰)은 이두(吏讀)를 창시하여 구경(九經)을 해 석하였다. 당시 유교는 유능한 관리 양성이 목적이었고, 부차적으로는 사 대부들(지도계급)로 하여금 경사(經史)에 능통하게 하고 사부(詞賦)와 문장을 능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태조의 숭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25 불정책(崇佛政策)으로 유교가 한때 부진하였다가 성종 11년(서기 992년)에 비로소 국자감(國⼦監)을 세웠고, 문종 때는 최충(崔沖)이 9재(齋)를 설치하고 학도를 가르쳤다. 이후 무관의 발호와 계속된 전란으로 유교는 다시 침체하였다가 고려 25대 충렬왕 때 안향 (安珦)이 왕을 따라 연경(燕京)에 다녀오면서 『주자전서(朱⼦全書)』를 입수해온 후 국학을 세우고 대성전(⼤成殿)을 건립해 공자를 존숭 하는 등 유교 부흥에 힘썼다. 그는 한국에 주자학(朱⼦學; 性理學) 을 처음 수입하여 우리나라 주자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성리학 은 이(理)·기(氣)의 개념을 천착하면서 우주의 생성과 구조, 인간 심성의 구조,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세 등에 관하여 깊이 사색함 으로써 한당(漢唐)의 훈고학(訓詁學)이 다루지 못하였던 형이상학적 (形⽽上學的)·내성적(內省的)·실천 철학적인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유 학사상을 수립하였다(서울대 교육연구소, 1995). 유교의 교육론은 인성론과 우주론에서 도출된다. 주자가 『대학 (⼤學)』 장구서(章句序)에서 “하늘이 사람(백성)을 내릴 때 인의예지 의 성품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부여받은 각 개인의 기질 이 혹 똑같지 못한 까닭에 모든 사람에게 그 성품의 온전함을 알 게 하여 완전하게 펼치지 못하는 것”12)이라고 했듯이 하늘은 모 든 인간에게 인의예지와 같은 올바른 성품인 천명지성(天命之性),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부여하였다. 문제는 인간의 기질인데, 사람 12) 蓋⾃天降⽣民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 然 其氣質之稟 或不能⿑ 是以 不能皆有以 知其性之所有 ⽽全之也.

26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가운데는 기질이 맑은 사람과 탁한 사람, 순수한 사람과 잡박한 사람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안경식, 2000: 126). 유교는 하늘의 성품을 보하고 인간의 욕망을 금하며 본성을 회 복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태교와 가정교육, 소학교육, 대 학교육의 단계를 거치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임신 열 달간의 태중교육인 태교는 임부의 심신 안정과 생활의 절제를 통 해 태아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막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 려는 교육을 말한다. 지금의 유아교육에 해당하는 가정교육은 연 령에 따라 학습 과정과 내용이 구별된다. 즉, 출생 후 5세까지의 유아에겐 주로 식사·언어·의복 등의 생활 습관과 관련된 교육을, 6세부터 9세까지 아이에겐 숫자와 방위에 대한 학습, 남녀유별과 장유유서의 교육이 주를 이룬다. 8세 혹은 10세가 되면 남자의 경우 학당에 나가 스승을 정해 본격적인 유교교육을 받는데 이 단계가 바로 소학교육이다. 여기서는 부모 사랑, 어른 공경, 스승 존경 등의 생활예절을 배우고 육예(禮, 樂, 射, 御, 書, 數)를 배운 다. 15세에서 20세까지의 연령기면 대학교육이라 하는데 이 단 계에서는 궁리(窮理), 정심(正⼼), 수기(修⼰), 치인(治⼈)의 도리와 대 학지도(⼤學之道), 군자지도(君⼦之道)를 배운다(안경식, 2000: 127~ 128). 여기서 교육이란 용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교육’이란 말은 일본의 영향과 밀접한 갑오개혁(1894년) 이후 사용 빈도가 두드러지게 증가한 용어로, 이후 가르치고 배우는, 즉 교수-학습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27 의 개념으로 교육이란 말이 보편화되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까 지만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교육 외에 다양한 개념들이 존재하였 다(한용진, 2014).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의 행위개념, 곧 교수-학 습의 개념은 군자지학(君⼦之學)이었던 유교에서 특별히 강조된 개 념이었다. 유교의 사유체계에는 다양한 교육행위 유형의 용어들이 존재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교수-학습 관련 개념을 분석한 강성훈(2016) 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세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사대부들이 주체가 되어 왕자(王者)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관련 유형으 로는 보도(輔導), 보양(輔養), 계옥(啟沃) 등의 개념이 사용되었다. 보도는 왕과 세자의 교육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보양은 세 자에 대한 교육의 의미가 강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둘째, 군주가 주체가 되어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그 대상을 사대부 및 차기 군주로 하는 행위유형으로는 교양(敎養)과 교육(敎育)이란 개념이 사용되었다. 이 두 개념은 자구 자체의 의 미나 실재의 의미에서 인재 양성 및 관리라는 뜻을 가진다. 구체 적 교수 행위는 사대부들이 담당하고 물리적 조건을 구비하는 것 은 군주가 담당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는데 조선 시대에는 교육보 다는 교양이란 개념이 훨씬 보편적이었다. 잘 알려진 바대로 교 육이란 개념은 『맹자』의 「진심(盡⼼)」장을 출전으로 삼는다. 그런 데 「진심」장이 군주 교육을 위한 천하주유가 끝난 후 맹자의 언 행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교육의 행위

28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주체는 군주가 아니라 군자(君⼦)이며 그 대상 역시 천하인이지 왕자(王者)가 아니다. 여기서 근대 이후 교육이란 개념이 보편화되 면서 원래의 뜻으로 환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일반 민 중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습속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용어로는 교화(敎化), 덕화(德化), 무육(撫育)이 있다. 교화와 덕화의 경우 최 상의 행위 주체는 군주이며 사대부들이 이를 분담하는 형태로 사 용되고 있다. 아울러 그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사대부들이며 최종 적으로는 덕성의 함양이나 습속의 정화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 용되었다. 특히 ‘어루만져 기르는’이란 뜻을 갖는 무육은 자구대 로의 해석과 함께 그 활용에 있어서도 생물학적 성장과 그에 따 른 지원과 관련된 개념이었다. 유가의 정치철학에서 민생의 물리 적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을 권력 집단의 주요 임무로 간주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이 용어의 개념은 다양한 대상, 예를 들어 유 아나 아동, 자녀, 처자 등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외에도 노 비, 왜노, 변방의 야인과 신료, 세자와 종친에까지 이르는 대상들 의 물리적 안녕을 보장하는 의미로 상용하고 있다. 특히 백성과 결합해 그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행위를 의미할 때 이는 교화의 근본으로서 유가적 통치 목표 달성을 위한 교수 행위이자 대상으 로서는 학습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 역시 행위 주체는 군주와 사대부였다(강성훈, 2016: 173~177). 요컨대, 조선 시대 성리학이 사대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착근되던 당대에는 교육이란 개념보 다는 대상에 따라 다른 개념, 즉 인재 양성이란 의미에선 교양이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29 란 용어를, 백성과 아이, 자녀, 처자 등을 대상으로는 무육이란 용어가 훨씬 더 보편적인 용어였던 것이다. 유교에서도 인간존재를 우주적 존재로 보고 인간의 이상적 삶 을 우주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점에서 다른 전통사상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유교는 동양의 전통사회에서 오랫동안 정치적 이데 올로기의 역할을 해오면서 초월적 입장보다는 현실적 입장을 취 하게 된다. 특히 조선 시대 들어와 성리학이 득세하면서 원시유 교의 사상과는 달리 훈육적인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동학은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如天), 인내천(⼈乃天) 등의 이념을 주창한 사상으로 역시 인간 존재의 근원을 하늘에 두었다 는 점에서 전통사상의 맥을 잇고 있다. 천도교의 전신인 동학은 1860년 4월 5일 수운(⽔雲) 최제우(1824~1864)가 시천주의 교리 를 중심으로 창도하였다. 님(하느님)은 초월자이나 부모님같이 섬길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이며, 동시에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 터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란 시천주 사상은 인간 존재의 근 원을 님으로 두었다. 수운의 제자였던 해월(海⽉) 최시형(1827~1898)은 동학의 2대 교주로 그는 스승인 수운의 시천주 사상을 이어받아 동학의 정신 을 체계화하였다. 그는 님을 모신다는 의미의 시천주 사상을 사람이 곧 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다. 즉, 인 간의 존엄성을 중시하여 모든 인간을 본질적으로 동등하고 평등 한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가르침

30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을 받아들여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사인여천 이며, 곧 우주만물은 물론이고 사람들 모두 이 님이 기화되 어 이루어진 결과라고 강론하였다. 시천주에서 사인여천으로 이어 지는 동학의 사상은 곧 ‘인즉천(⼈則天), 사람이 곧 하늘’이란 논리 로 일관되게 관통하며 ‘아동 역시 사람’이란 점에서 아동 존중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유교가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화되어 특정 계층을 옹호하는 이 념으로 바뀌었다면 동학은 전통적 하늘의 개념을 시대적으로 새 롭게 해석해 근대적 인간 존중, 인간 평등의 이념과 결부시킨 것 이다. 특히 최시형은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고 하면서 근 대적 아동관과 여성관의 이념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사람이 곧 하 늘(⼈乃天)임을 주창한 천도교주 의암(義庵) 손병희(1861~1922)의 사위인 소파(⼩波) 방정환(1899~1931)은 어린이가 님이라는 근대적 아동관과 교육관을 내세워 한국 전통 아동관과 아동교육 사상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였다(안경식, 2000: 171~196). 2. 근대 학교의 설립과 소년운동 1) 근대 학교의 설립과 한계 근대 학교 교육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교육이 공교육을 통해 행해진다는 점이다. 특히 초등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31 교육이란 기초 학교급의 교육단계가 공교육체제로 구축되어 국민 들에게 보편화되어야 한다. 이는 근대국가 형성에 있어서 국민의 지식이 국가 부강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에 의한 것이다. 근대 학교의 교육내용은 독서산(讀書算)의 실용 교과와 국어·도덕·국사· 지리(자국의 지리) 등 국민적 일체감을 갖게 하기 위한 교과로 구 성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공교육체제에서 근대 학교 교육이 자리 잡기 전에 우리 나라에는 근대적 의미의 학교가 이미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즉, 최초의 근대적 사립학교인 원산학사가 1883년에 설립되었고, 1885년에는 미국 북감리회 아펜젤러(Appenzeller, 1858~1902)가 최초의 근대식 중등 학교기관인 배재학당을 설립하였으며, 1886 년에는 최초의 근대적 공립학교인 육영공원이 설립되었다. 같은 해 5월 31일 미국 북감리회 여선교부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Scranton, 1832~1909)이 서울 정동 자택에서 여학생 한 명을 대 상으로 수업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이화학당의 모태 가 된다. 이듬해인 1887년 2월 고종황제가 이화학당이란 명칭을 하사하였고, 이화학당은 1904년 중학과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유 아교육과 관련해서는 1897년 부산에서 처음 유치원이 설립되는 데, 당시 유치원 교육 대상이 일본인 아동이란 점에서 한계와 논 란이 있다. 조선인 대상으로 최초의 유치원 교육을 실시한 유치 원은 1914년 이화유치원을 꼽는다. 하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1894년은 우리의 근대 학교 교육사

32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때를 기점으로 해 우리 교육의 근 간이 되는 각종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김경미, 2000). 비록 갑오개혁(甲午改⾰)이 일본의 영향이 짙은 혁신이었지 만 이는 일본을 근대의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한계 이기도 하였다. 조선은 1876년 개항 이후 근대적 교육개혁에 관 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1894년 마침내 갑오개혁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를 일러 갑오개혁기13)라 하는데, 당시 개혁은 크 게 두 가지 부문으로 추진되었다. 하나는 국가의 부국자강과 독 립수호를 위해 필요한 인재들을 시급히 길러내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민중의 각성을 위한 근대적 초등교육기관의 설립이 었다. 당시 조선은 부족한 재원에도 불구하고 1905년 을사늑약 이전까지 약 10년간 서울에 9개의 관립 소학교와 지방에 109개 의 공립 소학교를 설립하였다(정진걸, 이혜영, 1994). 초등교육의 개혁은 당시 학교 교육의 개혁을 맡은 학무아문(學 務衙⾨)이 1894년 9월 1일과 10월 1일 각각 소학교와 사범학교 설립에 관한 고시문을 공포하고 소학교 취학대상을 ‘7세 이상 남 아를 골라 모두’, ‘위로는 공경대부(公卿⼤夫)의 아들로부터 아래로 는 모든 백성의 준수(俊秀)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로 하였다. 교 13) 갑오개혁기란 협의로는 1894년 7월 27일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가 설치되어 동년 12월 17일 폐지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1894년 7 월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유길준 등의 온건개혁파가 정권에 참여하여 개 혁을 주도하기 시작한 후, 1896년 2월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몰락하기까지 의 갑오년~을미년 간 7개월가량의 기간을 지칭한다.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33 육을 받는 데 있어 계급은 구별하지 않았지만, 성차별은 존속된 유교적 가치가 배어 있는 고시문이었고 여성교육을 폄하하던 당 대의 인식이 반영된 문장이었다. 그런데 소학교를 설립·운영하는 일은 반드시 국가의 책무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10월 1일 고시 문에는 소학교 교육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 서당 등을 활용하려는 생각을 밝히고 있다. ‘교육을 존숭(尊崇)하는 것은 군사(君師)이고 강명(講明)하는 것은 종사(宗師)’임을 강조해 교육에 있어서 국가 (王)가 지침을 마련하고 책자 등을 나눠 주되, 직접 학교를 설립 해 가르치는 일은 민(民)의 일임을 설득한 것이다. 국가재정이 부 족한 당시 신교육의 장은 확대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고육지 책이라 하겠지만 우리나라 사학이 관학에 견줄 만큼 확장이 가능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1895년 4월 19일 학부관제에 의해 학무아문은 4월 25일부터 학부(學部)로 이름이 바뀌었다. 학부에서 소학교령을 기초해 학부 대신 이완용이 내각에 청의(請議)한 것이 동년 9월 2일이었다. 이 후 9월 7일 각의에서 수정을 거친 후 고종의 재가를 받아 반포 하였다. 소학교령은 모든 인민에게 동일한 내용과 체제로 보급하 도록 하였고, 또한 여아교육에 대해서도 차이가 없다는 이유로 교육대상에 포함을 시켰다. 이를 학무아문의 고시문과 비교해 볼 때 교육의 목적이 소수의 인재 양성에서 국민 양성으로 바뀌면서 모든 인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통교육의 개념이 도입된 것으로 평 가할 수 있다. 그런데 소학교령 제1조는 일본의 소학교령(1890)

34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 교육 영역 제1조에서 도덕교육이란 낱말만 빼고는 동일하였다. 또한 소학교 수신(修⾝)의 대강은 일본의 ‘소학교 교칙대강(⼩學校敎則⼤綱)’을 그 대로 번역해 옮기면서도 ‘신민으로서’라는 말을 추가하였다. 여기 서 신민(⾂民)이란 말은 일본의 수신이 그 취지에 터하고 있는 「교육에 관한 칙어」(敎育勅語)에서 사용된 것으로, 천황만을 주권자 로 규정한 메이지헌법(明治憲法) 하에서의 일본 인민을 말한다. 즉, 조선에서 의미하는 신(⾂)과 민(民)이란 뜻과는 다른 것이었다. 수 신의 덕목도 양국이 똑같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학부대신 이완 용이 내각에 청의한 이후 반포하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인 학부 보 좌관(⾼⾒⿔, 野野村⾦五郞)과 고문관(⽯塚英藏)의 관여와 개입에 의한 것으로 일본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김경미, 2000: 31). 학무아문에서 추진하던 소학교가 유교도덕을 비롯하여 국문과 조 선 지리, 역사를 가르치면서 점차 보다 많은 인민에게 교육을 확 대하면서도 교육의 목적은 인재 양성에 두었던 과도기적 형태였 다면, 학부의 소학교는 일본식 근대교육을 모델로 삼아 국문과 산술, 체조 및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신민을 형성해 나가려는 근 대교육이었다. 그러나 이 근대교육은 자강의 국민을 양성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벗어나 자국에 대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 을 키워내는 식민지교육의 단초가 될 우려와 위험성을 지닌 것이 었다(김경미, 2000: 33~37). 하지만 일제는 1906년 8월 보통학교령을 통해 기존의 소학교 역사까지 말살하였고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후 본격적인

제1장 한국의 전통적 아동관: 전통과 근대의 만남 35 한국침탈 장면에서 식민지배의 효과적 수단으로 학교 교육을 이 용하면서 교육의 의미와 기능을 왜곡시키기조차 하였다(이혜영, 윤 종혁, 류방란, 1997). 그 압권이 바로 제1차 조선교육령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에 대한 일제의 교육방침과 교육에 관한 법적 지위를 갖는 조선교육령은 1911년 8월 조선총독부가 공포하였는데 당시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의 교육방침은 우리 민족에 게 이성이 발달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주지 않는 데 있었다. 즉, 우민화정책이었다. 일본신민화(⽇本⾂民化)의 토대가 되는 일본어 보급, 이른바 충량(忠良)한 제국의 신민과 그들의 부림을 잘 받는 실용적인 근로인·하급관리·사무원 양성을 목적으로 삼았다. 일본 과는 다른 학제, 교육에 따른 차별을 두면서도 학교 교육을 통한 내선일체(內鮮⼀體)와 일선동조론(⽇鮮同祖論)을 펴기 시작하였다. 아동에게 해당하는 학제로는 일본과 달리 소학교가 아닌 보통 학교라 칭하였고 수업연한도 일본의 6년보다는 훨씬 짧은 3년에 서 4년의 기한을 두어 초급단계의 기초교육에 머물게 하였으며 중학교 역시 일본(중학교, 5년)과는 달리 고등보통학교라 칭하면서 수업연한을 4년으로 두었다(손인수, 1985: 388).14) 고등보통학교의 교육과정은 저급한 실업교육에 초점을 맞춰 하급관리, 사무원, 노 14) 차별적인 학제와 수업연한은 1919년 3·1운동 이후 1922년에 공포된 제2 차 조선교육령에서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일본학제와 동일하게 개정 (보통학교는 지역에 따라 4·5년제 존치)한다. 이른바 융화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러 나 이면에는 동일한 교육제도와 수업연한을 확충함으로써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 또는 말살하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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