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092 대한민국아동권리 100년사 녀단체들과각신문사기자들을모아어린이날행사를전국적으로확 대하기 위한 비상설치기구인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했다. 그리 고 1923년 5월 1일조선소년운동협회는서울천도교당에서제1회어 린이날기념행사를열고어린이선언을발표하고, 전단지를제작해협 회에속한조직들과협력하여전국에배포하였다. 또한김기전은 《개 벽》 35호에 <개벽운동과합치되는조선의소년운동>과 <5월 1일은 어떠한날인가> 등의글을발표하여소년운동과어린이날의의미를 널리전파하였다. 이때의행사와선전전이성공적으로진행되어 1년 뒤인 1924년 5월에는 조선소년운동협회에 가입한 단체가 123개에 이를정도로모두에게큰호응을얻었다. 하지만호사다마라고하던가. 현실은녹록치않았다. 참여하는사 람과단체가늘어나다보니자연스레의견의차이로인한갈등또한 생겨났다. 이념에따른갈등이었다. 민족주의계열과사회주의계열 의소년운동은통합과분열의역사를거듭한다. 1925년조선소년운 동협회의 활동에 불만을 품은 일부 소년단체들이별도로 ‘오월회’를 조직하면서 소년운동계는 양분되기 시작한다. 오월회는 무산소년운 동을표방한사회주의이념단체로이들은의견차로인해 1926년부터 2년동안조선소년운동협회와는별도로어린이날행사를열었다. 하지만어린이를위한운동이이념에따라갈라져서는안된다는 우려의목소리가높아갔다. 이에양측은타협점을찾으려하는데, 그 결과가‘조선소년연합회’의결성이었다. 1927년두단체는모임을갖 고 100여개이상단체의가입신청을받아 52개단체대표 96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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