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087 민족운동과아동의발견 조선인의료인력의노력과브나로드운동 이시기보건의료분야에서조선인들의활동은크게눈에띄지않 는다.다만그와중에도조선인의료인력이사회로배출되기시작했 다는점은특기할만하다. 1916년경성의학전문학교가설립된이후 1945년까지조선인 1,594명,일본인 1,630명의졸업생을배출했다.3 초기에는이들간에도개업자격에차등이있었으나 1922년 2차조 선교육령이후양쪽모두동일한대우를받게됐다. 1926년에는경성 제국대학에 의학부가 설치됐으며 제한적이지만 조선인들이 입학해 보건의료인력을배출하기시작했다.이후점점조선인의사및의료 인배출이급격히증가했다. 그외에도각교파가연합하여세브란스연합의학교를출범시켰으며 졸업생들은무시험으로의사면허를받고개업도가능해졌다. 1923년 에는평양과대구의의학강습소가의학전문학교로발전하는가하면, 1928년최초의여성의료인양성기관으로조선여자의학강습소가설 립돼이후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발전한다. 또한이화여자전문학 교등을통해다양한의료인력들이배출되어선교를겸해의료활동 을하게된다.하지만이시기에도일제는대부분조선인과일본인의 입학비율을 1대 2 정도로억제하면서식민지경영에필요한최소한 의졸업생만배출하려했다. 3 이충호, 《한국의사교육사연구》,국학자료원, 1998,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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