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143 국가재건과아동권리 력을갖지는못했다. 하지만아동과그권리에대한관심은지속적으로커졌다.해방직 후개성에서최초의보이스카우트단체인금강소년척후대가조직되었 으며, 서울에서는조선소년군이김구를총재로선출하고창립기념식 을거행했다. 조선소년군은다음해인 1946년에사단법인대한보이 스카우트중앙연합회로이름을바꾸었다. 같은해에한국걸스카우트 의전신이라할수있는조선소녀단도발족하였다. 한국보이스카우 트와걸스카우트역사의시작이었다.또한윤석중을중심으로조직된 조선아동문화협회는 《소학생》이라는기관지를발행했다. 그동안정 체되고숨죽이고있던소년운동이다시금기지개를켜며시작되는듯 보였다. 한편 1946년 5월 5일제24회어린이날기념식이열렸다. 1937년 을마지막으로일제가강제로중단한이래로실로오랜만에부활한 것이다.이때현재의어린이날노래(윤석중작사,윤극영작곡)도만들어 졌다.해방전까지어린이날날짜로인한혼란이컸는데,이때부터어 린이날은우리가알고있는 5월 5일로확정되었다. 어린이날의부활에이어눈여겨볼또다른사건은‘어린이헌장’이 만들어진것이다. 1957년, 보건사회부는아동복리법안의초안을작 성하면서한국동화작가협회에어린이헌장의초안을작성해달라고의 뢰했다. 당시국무회의상정안에는어린이헌장의작성배경이잘드 러나있다.

RkJQdWJsaXNoZXIy MTU2Mjc2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