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아동권리역사관

126 대한민국아동권리 100년사 도해방정국에서귀국하는사람들을통해전염병이유입되는걸막기 위해노력했다.검역을강화하는가하면전국적으로‘쥐잡기운동’을 전개한다거나 DDT(살충제)를살포하기도했다.어린아이들에게미군 이흰가루를듬뿍끼얹는옛날사진을누구나한두번본기억이있을 것이다.그하얀가루가바로강력한살충효과를가진 DDT였다. 또 한천연두, 이른바두창을없애는데도노력을기울였다. 해방후정 국의혼란중에천연두환자수가급증했는데, 1920년대에 1천명을 넘지않았던환자수가 1946년 4월 1만 9,809명에달한것이다.6 그 야말로환자가폭증했다. 이후군정당국의노력으로안정적으로확 산세를막을수있었다. 1948년정부수립이후보건·후생·노동·주택및부녀업무를총 괄하는부처로사회부가설치되면서군정에서해오던보건후생사업 을 이어받았다. 이듬해 사회부는 보건부와 사회부로 분리되어 각각 정책을담당하였다.그러다 1950년한국전쟁의발발과더불어전쟁과 전후복구과정에서도응급구호와보건행정을진전시켜나갔다. 그러던 1951년, 한국감염병역사에서유례없는대참화로기록될 천연두의 대규모 발병이 일어났다. 혼란스런 전쟁 중의 통계임에도 총환자수 4만 3,213명, 사망자 1만 1,530명으로집계될정도였으 니그규모가이루말할수없을정도였다.이를해결하고자이듬해부 터매년 200만~300만명의대규모접종을실시하기에이른다. 6 박윤재, 《한국현대의료사》,들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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